대학 졸업 후 이 책을 들고는 이젠 하다하다 연필깎는 법까지 책이 나오는구나.. 했었다.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자 혀를 쯧쯧 차면서 집어든 책이다. 그런데 웬걸, 금방 끝날것 같은 책인데 펼쳐보니 꽤 전문적이다. 재료부터 시작해서 손목도 풀고 시작한다. 재치있는 말투에 홀린듯 읽다보니 스트레칭과 준비만 끝나있었다.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하고 꺼냈는데 선 채로 끝까지 다 읽게하는 재미가 있었다.
장인이 혼을 담아 깎은 연필은 내 연구실에 놓여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게 웬 연필이냐고 묻곤하지요. 이후의 대화는 종종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유익한 방향으로 말예요. 예를들어 '탈산업 시대게 수공예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같은 사회학적 질문, '연필을 깎는 직업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것은 안식일에 허용되는 일인가.'라는 유대교 율법의 의문, '아름답게 깎인 노란색 HB 연필의 놀라운 아름다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미학적 질문, '장인이 부여한, 뾰족함의 등급을 비전문가가 스스로 검증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적 질문, '줄곧 진열되어 있기만 한 연필도 '도구'인가?' 이를테면 하이데거의 손안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느냐 하는 형이상학적 질문 등 다양한 질문이 나올 수 있죠. 요컨대 나는 그 연필 덕에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가르침을 줄 기회가 많았습니다. 교육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데이비드 리스 씨의 연필깎기 서비스를 추천하고 싶어요.
그렇다. 그는 연필깎는 게 너무 좋아서 사업까지 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12달러였지만, 이 책을 쓰는 13년도에는 연필을 깎는 데 35달러나 했다. 꽤 사업수완이 좋다고 봐야겠다.
샤프펜슬과 전동 연필깎기에는 싫어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는데, 사회악이라고까지 생각하는 듯하다. 얼마 전 나도 전동연필깎기가 생겼다. 나에겐 조카들이 넷이나 되서 집에 연필깎기를 가져다뒀다. 그 때 이 책이 떠오르면서 이유모를 상실감과 죄책감까지 생기는 것이다. 작가는 전동 연필깎기 기계는 연필깎기의 예술적 행위를 방해하므로 주위에 쓰는 집이 있다면 몰래 망치를 들고 들어가 기계를 부숴버리라고 한다.
물론 너무 멀어서 우리집에 몰래 들어오는 일은 없을테니 무섭진 않았지만 왠지모를 아쉬움과 미련같은게 남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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