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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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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거트파르페 2020. 3. 3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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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아동

코로나19로 개학이 늦춰졌다. 일단은 4월 6일인데, 아직은 더 미뤄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나 역시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지금 아이들을 돌봐주는 건 대부분이 조부모님일텐데, 기저질환이 있는 노령의 어르신들은 면역에도 취약하다. 아이도 아이지만 함께 지내는 선생님들, 학원친구들까지, 학교에서 지역사회 감염으로 뻗어나가리라는 것은 안봐도 뻔한 일이다. 보건교육을 할 때, 일반적인 손씻기, 올바른 양치법 등의 자료는 학교에서 통지문 형태로 많이 뿌린다. 그게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EBS에서 강의를 한다기에 오늘 아침 시간에 맞춰 TV를 틀어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 국어 시간에 '소나기'라는 시를 강의해주었다.


소나기

오순택

누가 잘익은 콩을
저렇게 쏟고 있나

또로록 마당가득
실로폰 소리난다

소나기 그치고 나면
하늘빛이 더 맑다


동시라 그런지 참 쉬우면서도 감성적이다, 하는게 첫 느낌이었다. 선생님의 맑다[막따] 발음에 집중하며 역시 국어 선생님~ 하면서 보는데, 강의 내용에 의문점이 생겼다. 누가 잘 익은 콩을/바닥에 쏟고 있나 에서 시각이 아니라 청각 표현을 사용했다는 부분이었다. 언뜻 내 생각에는 좌르륵- 소리 때문인가, 하면서도, 빗방울이 어딘가에 맺혀 후두둑 떨어지는 모양이나 바박에서 동심원을 그리는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시각적인 상상에 집중해서일까, 싶어 계속해서 문장을 되뇌인다. 투명 우산에 떨어지고 있는 빗방울들은 분명 동그란데? 청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이래서 내가 문학에는 취약한가? 필자는 언어영역 비문학은 항상 만점이었지만 문학에서는 꼭 한문제씩 틀리곤 했다. 예를 들어 ㄱ. "........ " 여기서 ㄱ의 감정은? 뭐 이런것들. 내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싸이코패스는 분명 아닌데, 말도 안하고 있는 사람 감정을, 표정을 본 것도 아닌 내가 어떻게 아냐고 항변하고 싶다. 이런 문제들은 주로 앞뒤를 다 읽어봐도 대략적인 상황밖에 모르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찾기가 어렵다.

차라리 1연이 2연을 꾸며주는 시라고 말했으면 수긍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냥 무조건 청각이라니. 선생님(=권위있는 사람)이 말하니 얼핏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잘 따라가고 있는 게 맞나?

왜 벌써부터 설명을 청각이다, 라고 했냐면, 뒤따라 나오는 문제에서 청각이냐 시각이냐로 논쟁을 벌이고, 그 중 맞는 것을 골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문제 풀기위한 밑밥이었나, 싶었다. 문제에서 정답을 맞추는 것. 이렇게 선생님을 잘 따라가다 보면 정답은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직은 초등학생에게 정답을 위한 공부는 안타깝게 느껴진다.

마지막 문제로는 느낌을 써보세요. 였다. 느낌 써보라 하면 부담감을 먼저 갖는게 나였던지라,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에게 선수쳤다. "어때? 이모는 비오는 시 들으니까 시원해서 좋다." 그 나이대에 맞는 감상평을 던져줬다. 조카는 "비오면 밖에 못 나가니까 ㅇㅇ이는 싫어."라고 대답했다. TV 속 선생님은 '소리를 이용한 청각적인 표현을 보니 재밌었다.'(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고 썼다. 청각적인 표현? 물론 교과서에도 문제에서 나왔을 것이고, 선생님도 설명하긴 했다. 그래도 갑분싸는 이럴때 쓰는 말이 맞다.

새삼 아이들이 이런 공부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사회문제집을 봤다. 장소와 고장, 백지도와 디지털영상, 인공위성 영상 등을 구분할 수 있고, 각각의 뜻과 특징 정도는 알아야 했다. 나도 뭐 4학년 사회시간에 우리나라 강과 평야, 산맥이름 외우기를 했던 기억이 나니까 얼추 비슷한 수준인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집이 전과 역할을 해서인지, 수행평가까지 다루고 있었다. 예시로 춘천 백지도를 보여주고, 우리고장 지도를 놓고도 문제가 출제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럼 지도 보는 법을 배우는 게 우선 아닌가? 위성사진 하나, 백지도 하나 던져줬는데 A가 백지도에서 어디쯤인지 아직은 가늠을 잘 못한다. 그게 비정상이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 고장에서 주요장소 5곳과 소개하고 싶은 5곳을 써라. 라던가 친구들에게 지도를 가지고 설명해 보세요. 라니. 아이들이 지레 겁먹을만 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뭐든지 잘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싶은 건가? 수행평가로 지도 하나 던져놓으면 "우리가 있는 초등학교는 여기고, 우리가 나온 어린이집은 여기야. 여기엔 경기도청이 있고, 시청은 여기 있어. 여긴 역사가 깊은 수원화성이야." 이런 발표를 하길 원하는 건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어로 열댓장 분량의 '시골쥐와 서울쥐'를 나 혼자 번역해야 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은 막막함일 것이다.

물론 그걸 해냈을 때 어른들이 느끼는 성취감과 자랑스러움도 있을 것이다. 4학년때 원숭이와 침팬지에 관해 백과사전을 복사해 반 아이들 앞에서 발표한 게 생각났다. 담당 선생님이 원하는 걸 잘 캐치해야 한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을 말하면 돼. 이게 진짜로 창의력 학습 운운하는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지는 모르겠다. 외국의 토론학습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천편일률적인 대답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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