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장이의 딸
노벨문학상 후보로 매번 거론되는 조이스 캐롤 오츠라는 작가가 있다. 개인적으로 여류작가들 중에서는 스토리도 탄탄하고 몰입감 있으면서도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켜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책이 몇권 안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실망감이란! 매번 나는 너무 빨리 읽어댔고, 마음에 드는 작가가 생기면 그 사람의 모든 책을 찾아내서 읽는다. 어쨋든 제일 처음으로 이 작가의 책을 접한 게 10년 전인데, 바로 「사토장이의 딸」이다. 1, 2 두권으로 나뉘어있는데 필력이 대단해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봐야하는 책이다.
나는 그 날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고 집어올렸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그 당시 자주가던 도서관에서 그 책을 보았을 것이고, 여름방학이지만 토익 수업을 핑계로 학교 옆 도서관까지 버스를 타고 갔었다. 그날 시간이 많았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사토장이가 뭘까, '토'에서 흙 토자를 연상해서 땅을 파는, 무덤을 파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끄집어 올렸다. 한자급수 9급이어도 참 유용하다.(요즘은 유치원에서도 한자급수 8급은 따는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한문수업을 들었다.) 맨 앞 표지에 gravedigger 라는 글자가 내 예상이 적중했음을 말해줬다. 한번 더 기쁨을 느끼고 싶었던 나는 전자사전으로 gravedigger 라는 단어를 찾았지만, 그런말까지는 해석해주지 않았다.
내가 책을 선택하는 알고리즘은 이렇다.
제목이 흥미를 끄는가?
Y→내용을 펼쳐본다.
N→좋아하는 작가인가?
Y→집어든다.
N→옆에 동일 작가의 책들이 함께 있는가?
Y→몇권을 주루룩 뽑아든다.
N→표지나 책상태를 보고 예쁘거나 깔끔하거나 적당히 낡았으면(...) 내용을 훑어본다.
「사토장이의 딸」은 제목에서부터 합격했다. 게다가 그 옆에는 그녀의 소설들이 몇권 나란히 놓여있는게 아닌가! 내용을 주루룩 훑어보고, 일단 이 두권부터 읽기로 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들을 찾아다니며 탐독하기 시작했다. 물론 읽다가 만 소설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매번 그녀의 소설들이 보일 때마다 집어들게 되는 마성의 힘을 지녔다.
제목은 왜 이렇게 지었을까. 제목에서 보여지는 사토장이의 딸이라는 상태가, 그녀의 절망적인 상황을 대변한다. 또,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대표하는 말은 사토장이의 딸인 것이다. 타이틀은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흔치않은 제목을 보고 책을 집어든 것처럼, 누군가를 부를때 00대학 000, 교수님, 과장님 등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제목과 타이틀이야 지금에야 생각해보는 이야기고, 당시에 인상깊었던 건 스토리다. 아들을 혼자 키우며 알콜중독자 남편에게 맞는 레베카가 주인공인데 공장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한 남자가 계속해서 따라오고, 도망가던 주인공은 넘어져 붙잡히고 만다. 그녀를 들어본 적 없는 헤이젤 존스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남자. 그는 결혼이 무산된 일은 속죄하고 있으니 모르는 척 하지 말고, 부모님 모르는 다른 곳으로 도망쳐 살자고 한다. 의사라는 명함도 보여준다. 이쯤 읽었을때 과연 나라면 어떨까 생각하며 감정이입해서 읽었다. 나였다면..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알콜중독자 도박꾼 남편에게 맞느니 새로운 삶을 위해 길을 떠날텐데. 그녀는 자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빠져나온다.
나중에 소설의 마지막 부분까지 읽고 반전을 확인한 후에 충격이 컸다. 이후 그녀의 소설들은 믿고 읽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스포일러는 하지 않을 테니, 한번 읽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나처럼 제목에 흥미를 갖고 책을 집어든다면 더 좋겠다.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0) | 2019.12.13 |
---|---|
비밀의 화원 북커버를 사게 된 이유 (0) | 2019.12.13 |
겨울엔 따뜻하게 - 금요일 밤의 뜨개질클럽 (0) | 2019.12.11 |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 요나스 요나손 (0) | 2019.12.11 |
샘터의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 4권. 나 (0) | 2019.12.05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