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의 오후 - 어느 작가의 오후
페터 한트케가 어떻게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지 알고싶어서 다시 그의 작품을 꺼내들었다. 아무 설명도, 제목-저자-출판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노란 표지를 보고 감잡았어야 했다. 소설을 좋아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나에게는 지루한 책이다. 아마 짧은 지면이 아니었다면 읽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작가가 글을 쓰다가 환기할 겸 소재를 찾으러 나가는 오후다. 딱히 특별한 일이 없다. 장기하의 '나는 잘 살고 있다.'는 노랫구절이 떠오른다. 별일없이 산다. 나는 잘 살고 있다.
사실 읽는 도중에 너무 지겨웠다. 소설의 3요소라 함은 인물, 배경, 사건이라고 중학교때부터 배우는데 혹시 작가는 이걸 배우지 못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산책하는 이야기. 끝.
그는 가게 안의 어느 자리에 앉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불현듯 이들 각자에게 어떤 특이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알아버리곤 했지만, 다음 날 대부분을 잊어버렸다. 반면에 그가 가슴에 간직한 것은 특정한 관용적 표현, 외치는 소리, 몸짓과 말투였다.
한참동안 글을쓰느라 지금이 몇시인지도 모르는 작가가 오후 느즈막히 집을 나선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와 사람들이 많은 시내로 나가지만, 딱히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싶은 건 아니다. 오히려 마주치는 사람들이 말거는데 대답을 잘 못하고 공황상태에 빠질까봐 두려워한다.
혼자 살면서 사람 소리를, 혹은 집안일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만 글만 써댔으니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없다. 주위에 사람을 두기 어려워한다는 말뜻을 알 것 같다. 남자들은 가끔 혼자만의 동굴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가끔 쉬는 장소가 아니라 이 집이 주 생활공간이다. 사람이 사는것 같지 않은 집, 고요하고 적막하다.
그는 자신이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를 간간히 회상하며 후유증을 곱씹는다. 언어를 잃어버렸다가 되찾은지 얼마 안된 것 같아 보인다. 의미없이 길을 걷고 술을 마신다. 그날 오후까지 글을 써댔으니 오후부터는 나가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전에는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를 아예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글을 쓰지 않으면 나가있는데, 그 갭차이를 이상하게 여긴다. 하지만 나가서 하는 일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인생을 꿰어맞추는 일이다. 즉, 글을 쓰지 않을때는 글감을 찾고있다.
책을 덮을 땐 왜 이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고, 시간을 할애한 것만큼의 즐거움이 없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노벨문학상을 못받은 거겠지, 라고 위안 삼아본다. 나도 머리나 식힐 겸, 나가서 동네 한바퀴 마실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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